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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story

손자가 말하는 오월동주의 뜻과 유래를 알아보자.

by ⊂∵⊃⊆∵⊇∈∵∋ 2021. 8. 15.

오월동주는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탄다는 뜻입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하늘 아래 함께 할 수 없는 철천지원수 지간입니다. 이들이 같은 배에 타게 되면 아마도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이 뻔합니다. 하지만 폭풍이 불어 서로 돕지 않으면 배가 뒤집힐 위기에 몰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습니다. 같은 배를 탄 두 사람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서로 힘을 합쳐 사지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오월동주는 바로 이러한 상황을 빗대어 사지(죽을지 모르는 곳)에서는 원수지간이라도 힘을 합치게 된다는 뜻입니다. 또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오월동주 한자표기

오월동주의 유래

이 고사 성어는 손무가 쓴 손자병법의 ‘구지’편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손자병법의 ‘구지’편을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손자는 전쟁터를 9가지 지역(구지)으로 정의하고 각 지역과 상황에 맞는 전술을 이야기합니다.

9가지 지역은 산지(散地), 경지(輕地), 쟁지(爭地), 교지(交地), 구지(衢地), 중지(重地), 비지(圮地), 위지(圍地), 사지(死地)입니다. ‘산지’는 아군 지역을 말하고 도망가기 수월한 지역이고 ‘경지’는 깊이 들어가지 않은 적진을 말하며 퇴각이 쉬운 지역입니다. ‘쟁지’는 점령하면 유리한 지역이며, ‘교지’는 아군과 적군 모두 오고 갈 수 있는 지역입니다. ‘구지’는 여러 나라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외교가 필요한 지역입니다. ‘중지‘는 적진 깊숙한 지역이며 ‘비지’는 험준한 곳으로 행군에 어려움이 있는 곳입니다, ‘위지’는 진입하기 좁은 지역입니다. ‘사지’는 죽음을 각오하고 빠르게 싸워야만 살아날 수 있는 지역입니다. 손자는 이 ‘사지‘에서의 싸움을 논하면서 오월동주 이야기를 합니다.

대략 아래와 같은 내용입니다.

“사지에서 장수의 용병술은 상산에 사는 큰 뱀(솔연)의 몸놀림과 같아야 한다. 머리를 때리면 꼬리가 날아오고, 꼬리를 때리면 머리가 덤벼들며, 몸통을 치면 머리와 꼬리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이처럼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원수지간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함께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고 하자. 이때 갑작스런 폭풍으로 배가 뒤집힐 위기에 놓인다면 그들은 서로 왼손과 오른손이 되어 필사적으로 도울 것이다. 이와 같이 죽을 각오로 단결된 병사들의 마음만이 사지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즉, 죽음을 각오하고 한 마음으로 싸워야지만 불리한 사지에서 살 수 있음을 오월동주를 예로 들어 이야기 한 것입니다. 이순신 장군의 ‘필사즉생 필생즉사’가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와신상담을 통해 알아보는 오나라와 월나라의 관계

손자가 이야기한 오나라와 월나라는 어떤 관계이기에 서로 원수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오나라와 월나라의 관계는 와신상담이라는 고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와신상담은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 뜻은 가시 돋은 나무 위에서 자고 쓰디쓴 쓸개를 핥는다는 뜻으로 설욕과 복수를 위해 궂은일도 참고 견딘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와신상담은 한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와신을 한 사람은 오나라의 ‘부차’이며 '상담'을 한 사람은 월나라의 '구천'입니다. 두 사람 모두 상대에게 당한 굴욕을 갚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와신상담의 유래가 된 오나라와 월나라의 전쟁은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 오나라와 월나라는 서로 국경을 맞대고 있었습니다. 오나라 왕 합려는 군사를 이끌고 월나라를 쳐들어가지만 월나라 왕 구천에게 패하여 전투에서 맞은 화살로 상처가 악화되어 죽습니다. 죽기 전에 아들 ‘부차‘에게 반드시 원수를 갚아 달라는 유언을 남깁니다. 부차는 유언을 새기고 가시 많은 땔나무 위에 누워 (와신) 생활하며 복수를 다짐했습니다.

구천은 부차의 이러한 복수심을 알고 선제공격을 하였으나 오히려 크게 패하여 부차에게 항복했습니다. 이때 월나라 왕 구천은 부인과 함께 오로 잡혀가 부차의 수레를 끌고, 말을 기르며, 청소를 하는 등 각종 굴욕을 당하였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가게 된 구천은 스스로 몸과 마음을 채찍질하고 곁에 쓰디쓴 쓸개를 매달아 두고 쳐다보며 (상담) 치욕을 상기시켰다. 복수를 위해 구천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쳐들어갔고 부차를 굴복시켰다. 부차가 자결함으로써 구천은 복수를 갚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지간이었던 것입니다.

 

 

오월동주의 유래를 통해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두의 단결된 마음이 필요하다는 손자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고 더불어 와신상담을 통해 오나라와 월나라와 관련된 역사를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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