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날지 주저 앉을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초나라 항우의 이야기를 통해 권토중래의 유래를 알아본다.
권토중래의 뜻과 '제오강정'
권토중래를 한자로 풀면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전쟁에서 패하고 본진으로 돌아가서 힘을 키우고 재정비하여 다시 전장으로 돌아온다는 말이다. 군대를 재정비하여 강대해진 모습을 수많은 말과 병사가 행군하면서 발생하는 흙먼지에 비유한 것이다. 이 고사 성어는 오늘날에는 어떤 일에 실패하더라도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준비하면 재기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 고사 성어는 중국 당나라의 시인 두목의 시에서 유래되었다. 두목은 이상은(李商隱)과 더불어 이두(李杜)로 불렸으며 산문과 시가 뛰어났다. 시인 두목은 ‘오강‘이라는 지역에서 시를 하나 짓는다. 이 시를 ’ 제오 강정’이라 한다. ‘제오 강정‘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勝敗兵家事不期(승패병 가사 불기): 이기고 지는 것은 병가지상사라 예측하기 어렵나니
包羞忍恥是男兒(포수 인치시 남아): 수치를 참고 견디는 것이 진정한 사내대장부라
江東子弟多才俊(강동 자제 다재 준): 강동의 자제들 중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많으니
捲土重來未可知(권토중래 미 가지): 흙먼지를 일으키며 다시 왔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으리
시의 마지막 구절에 ‘권토중래’가 나온다.
시의 배경은 항우와 유방의 최후의 결전인 해하 전투를 그리고 있다. 항우는 해하전투에서 패한 뒤 자결한다. 이 장면을 상상하며 두목은 시를 썼다. 이 시는 항우의 마지막 결정이 달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 즉 패배에서 빠져나와 본거지로 돌아가서 다음 전투를 기약하고 권토중래 하였으면 역사의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
항우와 유방의 해하전투
시의 배경이 된 해하 전투와 전투의 중심인물이었던 항우와 유방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항우는 중국 진(秦) 나라 말기의 무장이다. 진나라가 혼란하자 진을 멸망시키고 서초 패왕이라 칭하게 된다. 항우는 키가 8척에 달했고 큰 솥을 번쩍 들어 올릴 정도의 건장한 체격과 힘을 가진 장사였다. 병법에 관심이 많았고 검술과 전투에 재능이 있었다. 진나라의 혼란을 틈타 거병하여 각지의 인물들을 모아 세력을 확장했다. ‘거록’ 전투에서 진나라에게 대승하며 이후 함곡관을 넘어 관중으로 진격한다. 진나라의 시황제 무덤을 파괴하고 황궁을 약탈하기도 한다. 이로써 진나라를 멸망시킨다. 진나라와의 전쟁이 끝난 후 논공행상에서 18명의 제후를 임명하였으나 공로를 인정받지 못한 장수들의 불만을 키우기도 했다. 항우는 훌륭한 무장이었음에는 분명 하나 정치적인 능력과 휘하의 장수들을 다룸에 있어 미숙한 점을 보였다. 또한 천하를 두고 다투는 상대인 유방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러한 점들이 항우가 최후를 맞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다음으로 유방에 대해 살펴보자. 유방은 중국 한(漢) 나라의 제1대 황제가 되는 사람이다. 진나라 멸망 후 항우와 전쟁을 치르고 끝내는 천하통일을 실현한다. 유방은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건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고 항우에 비해 재능이 특출해 보이지는 않았다. 진나라가 혼란해 지자 거병하여 '패공'이라 칭하였다. 이후 항우와 연합세력을 구축하고 항우가 동쪽에서 진군과 전투를 벌이는 사이 항우보다 한 달 앞서 진나라 수도를 함락시키고 진왕의 항복을 받는다. 이로 인해 항우는 크게 노하였다. 유방은 항우가 자신을 죽이기 위한 이른바 '홍문(鴻門)의 회(會)'에 불려 갔지만 다행히 부하 장량(張良)과 번쾌(樊噲)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였다. 진나라 멸망 후 항우는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 칭하였고 유방은 항우로부터 한 왕(漢王)에 봉해졌다. 그 뒤 4년간에 걸친 항우와의 전투가 이어진다. 유방의 휘하에는 소하(蕭何), 조참(曹參), 장량(張良), 한신(韓信) 등 유능한 신하와 장수들이 많았다. 이들의 도움으로 마침내 해하(垓下) 전투에서 항우를 없애고 중화 통일을 이룬다. 유방은 항우에 비해 출신은 미천했지만 대담한 성격을 가졌으며 치밀하고 포용력이 있었다, 용병술이 뛰어나 항우와 다르게 부하를 다룸에 있어 능숙하였다. 이것이 유방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해하 전투는 항우와 유방의 마지막 전투이다. 또한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권토중래가 유래된 두목의 시 ‘제오 강정’의 배경이 되는 전투이다. 이 전투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진나라 멸망 후 초나라와 한나라의 경쟁은 계속되었으나 한나라의 세력으로 대부분의 나라가 들어가게 된다. 이후 초와 한나라는 협상을 통해 화의를 맺어, ‘홍구’를 기준으로 동쪽은 초나라, 서쪽은 한나라가 나눠 다스리기로 한다. 하지만 이후 한나라는 화친을 깨고 전투를 벌인다. 이렇게 양군은 해하에 결집하게 된다. 초반에는 한나라가 불리했으나 이후 초나라 군대는 한신에게 대패하게 된다. 이로써 항우는 소수의 병력으로 남쪽으로 달아난다. 이를 알아챈 한나라는 추격을 시작했고 추격군에 의해 항우는 오강까지 도망가게 된다.
이때 항우의 부하가 강동으로 돌아가 재기를 도모하자고 권유하였으나, 항우는 거절한다. “강동에서 함께 일어난 8천 장정들이 모두 죽었는데 무슨 낯으로 강동으로 돌아가겠나?" 라면서 최후의 결전을 치르다가 끝내 자결한다. 바로 이 부분이 두목의 시에 담긴 것이다.
권토중래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초패왕 항우와 유방의 해하 전투를 담은 두목의 시에서 유래되었다. 항우는 권토중래를 도모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고 죽음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시에서 언급하듯 한 두 번의 실패는 전쟁에서는 늘 상 있는 일이다. 실패를 이겨내고 재정비하여 다시 자웅을 겨루었다면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 물론 이미 많은 나라가 한나라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초나라가 다시 재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선뜻 죽음을 선택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죽은 병사들의 목숨을 헛되지 않게 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사자성어 권토중래는 어떤 일에 실패하더라도 재기를 노리며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 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그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포기하지 말고 고사성어의 뜻처럼 다시 도전하여 성공을 쟁취하길 바란다.
'역사 story'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자가 말하는 오월동주의 뜻과 유래를 알아보자. (0) | 2021.08.15 |
---|---|
마태효과 뜻과 사례에 대해 알아봅시다. (마태복음 25장 29절에서 유래) (0) | 2021.08.08 |
읍참마속의 뜻과 유래 (가정전투 이야기) (0) | 2021.07.31 |
관포지교 뜻과 유래 (친구사이에 관한 사자성어) (0) | 2021.07.26 |
우공이산 유래와 뜻 (우직한 노력으로 뜻을 이루다.) (0) | 2021.07.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