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죽을 고비를 넘겼을 때 구사일생이란 말을 쓴다.
구사일생은 아홉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다는 의미로 구사일생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주 쓰는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구사일생의 유래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적다.
유래를 알고 나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뜻 이외에도 나라를 향한 충심이 고사에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구사일생의 유래
구사일생이란 말은 초나라 시인 '굴원'(B.C 340-278)이 쓴 '이소(離騷)'라는 시의 한 대목에서 유래되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굴원가생열전'에서 굴원이 이소를 지은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굴원은 왕이 신하의 말을 들을 줄 모르고, 거짓 간하고 아첨하는 무리가 왕의 총명을 덮어 그릇된 말이 나라를 해하고 바른 선비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근심하던 끝에 이소의 글을 지었다."
굴원의 시 '이소'에는 임금에게 충심으로 간하였으나 정치에서 밀려나게 된 실망감과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있다.
"긴 한숨 쉬며 눈물을 가림이여 민생의 하고 많은 고생을 슬퍼함이라.
내 비록 즐거이 수과로써 조심도 했건마는 애써 아침에 간했다가 저녁에 버림받았네.
이미 날 버리기를 혜초 띠로써 함이여. 다시 이에 거듭하기를 구리 때를 잡았기 때문인가!
또한 내 마음의 선미 로운 것이여. 아홉 번 죽어도 오히려 후회하지 않으리라."
여기서 마지막 구절의 "아홉 번 죽더라도(九死) 후회하지 않는다"에서 구사일생이 유래되었다.
초나라 귀족 출신이었던 굴원은 임금의 총애를 받은 인물이다. 그는 양심적이었고 교만하거나 음란하지 않았다. 곤궁한 처지에 놓여도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지조를 지켰다. 또한 지성을 겸비하여 초나라에서 유명한 시인이었다. 그는 당시 타락한 정치 때문에 고통받는 백성들을 보며 정치가로서 책임을 느꼈다. 백성의 편에 서서 그릇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간신들의 시기와 모함을 받고 추방을 당한다. 당시 현실 정치에서 밀려 난 굴원은 두 번의 유배형에 처해진다. 그는 자신의 정치 철학을 현세에 실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좌절한다. 이후 굴원은 좌절 속에서 10년 넘게 유랑생활을 하다가 62세 때 결국 돌을 안고 멱라수(汨羅水)로 뛰어들며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이 같은 굴원을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억울한 누명으로 임금에 눈 밖에 나 정치에서 밀려났음에도 변함없는 충성심과 나라를 걱정했던 인물로 평가하였다.
우리나라도 독재, IMF, 국정농단, 전쟁, 일제 침략 등 사회, 정치, 경제 등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나라를 생각하고 노력한 많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구사일생할 수 있었다. 구사일생의 유래를 읽으며 나라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고 힘쓴 이들에 대해 새삼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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