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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story

토사구팽 뜻과 유래(한 고조 유방에게 버림받는 명장 한신)

by ⊂∵⊃⊆∵⊇∈∵∋ 2022. 5. 15.

토사구팽은 토끼 사냥이 끝나면 필요 없어진 사냥개는 삶아 먹힌다는 뜻이다. 즉,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진다는 의미이다.

이 고사는 '사기-회음 후 열전'에서 '한신'의 이야기를 통해 유명해졌다.

 

 

하지만 토사구팽은 춘추전국시대 월나라에서 처음 보인다. 월나라 왕 '구천'의 신하 '범려'가 오나라를 멸한 후, 구천의 속내를 짐작하고 관직을 내려놓을 때 함께 있던 '문종'에게 같이 물러나길 권하면서 사용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나 초야에 숨은 범려는 화를 면하였으나 구천에 곁에 머문 문종은 결국 버림받아 자결한다.

한자 표기
토사구팽 한자풀이

토사구팽의 유래

앞서 언급했듯이 토사구팽은 한나라를 세운 '유방'과 명장 '한신'의 이야기로 유명해졌다.

한신은 초나라 회음 출신으로 유방과 함께 중요한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유방은 그의 공적을 치하하여 제나라 왕에 임명한다.

 

한편 유방과 패권을 다투는 초패왕 항우는 한신의 세력이 커져 자기 배후를 위협하게 둘 수 없었다. 항우는 한신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한신에게 사신을 보내 화해를 요청했다.

“한나라는 천하를 모두 손에 넣기 전에는 군사를 거두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초패왕이 지게 되면 다음은 바로 당신 차례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 서로 협력하여 천하를 삼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한신은 유방을 배신하라는 초나라 사신의 제안을 거부했다.

 

사신이 돌아가자, 한신 휘하의 괴통이라는 자가 나서서 한신을 설득하였다.
당시 유방의 한나라는 싸움에 지쳐있는 상황이었고 만약 한신이 항복시킨 위, 조, 연, 제의 땅을 합치면 유방, 항우, 한신의 세력으로 천하를 삼등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유방과의 의리와 옛정을 내세우며 천하 삼분지 책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괴통은 다음과 같이 한번 더 설득했다.

"사냥할 짐승이 없어지면 사냥개는 쓸모없게 되어 잡아먹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또 용기와 지략이 군주를 떨게 하는 자는 몸이 위태롭게 되고 공로가 천하를 뒤덮는 자는 상을 받지 못합니다. 장군은 한 왕의 신하이면서도 군주를 벌벌 떨게 하는 위세를 가졌으며, 그 이름 또한 천하에 드날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장군께서는 이미 대단히 위태로운 처지에 놓이신 겁니다."

괴통이 이처럼 강하게 간언 하자, 한신도 잠시 흔들렸다. 그러나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이후 한신은 초나라를 배후에서 더욱 압박하며 초패왕에게 승리하여 한고조가 중국을 통일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천하를 통일한 한고조 유방은 한신을 제왕(齊王)에서 초왕(楚王)으로 자리를 옮기게 한다. 제나라 지역은 제왕으로 머물며 한신의 근거지가 되었으므로 일종의 견제를 위한 인사였다.

 

제왕에서 초왕이 되었지만 초나라 지역은 원래 한신의 고향이다. 왕이 되어 돌아온 한신은 과거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사람들에게 보답하였고 자신을 업신여겼던 자들도 용서하며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그렇게 한신이 초왕으로 지내던 무렵, 유방에게 한신이 반역을 꾀한다는 상소가 올라온다.

초패왕 항우를 멸하고 한신이 초왕에 책봉된 이듬해에 항우의 맹장(猛將)이었던 종리매(鍾離味)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방은 지난날 종리매에게 고전했던 기억에 화가 났다. 그래서 한신에게 당장 종리매를 압송하라고 명했으나, 종리매와 오랜 친구였던 한신은 고조 유방의 명을 어기고 그를 숨겨 주었다. 그러자 유방에게 한신이 반심을 품고 있다는 상소가 올라왔던 것이다.

 

 

유방은 한신이 반역을 꾀한다는 말을 들었으나 마땅한 대책이 없어 답답했다.

당시 한신의 군사는 유방의 군사보다 강했고 한신의 용병술을 당할 자가 유방 아래에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진평'이란 자가 나서 계책을 들려주었다.

“폐하께서 운몽(雲夢)으로 제후들과 함께 유람할 것이라는 명목으로 제후들을 진구(陳丘)로 모이라고 명하십시오. 진구는 초나라의 서쪽 경계지역에 있으니 한신은 폐하를 배알 할 것입니다. 그때 그를 사로잡으시면 됩니다.”

진구는 한신이 있는 초나라와 가까운 곳이라, 한신은 제후의 한 사람으로서 진구로 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평의 계책대로 진구로 모이라는 황제의 명을 전해 들은 초왕 한신은 두려웠다.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던 것이다.

일이 틀어진 마당에 모반을 꾀할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자신은 죄가 없고 떳떳했으므로 별일 없을 것으로 믿었다. 순순히 황제를 배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감정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활한 신하 하나가 한신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종리매의 목을 가져가시면 폐하께서도 기뻐하실 것입니다.”

천하의 한신도 죽음이 두려워서였는지 종리매를 희생시키려 했다.

이를 알게 된 종리매는 크게 노했다.

“고조가 초나라를 치지 않는 것은 자네 곁에 내가 있기 때문일세. 그런데도 자네가 내 목을 가지고 고조에게 가겠다면 당장 내 손으로 잘라 주지. 하지만 알아두게. 그땐 자네도 온전할 수 없다는 것을.”

이 말을 남기고 종리매는 자결했다.

한신은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황제 유방을 배알 했다. 그러나 유방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신을 역적으로 몰아 포박했다.

일이 이지경이 되자 한신은 한탄했다.

 

"교활한 토끼를 사냥하고 나면 좋은 사냥개는 삶아 먹히고

높이 나는 새를 다 잡으면 좋은 활은 곳간에 처박히며,

적국을 부수면 지혜 있는 신하는 버림을 받는다고 하더니,

한나라를 세우기 위해 분골쇄신한 내가 이번에는 죽게 되었구나.”

 

 

하지만 유방은 한신을 죽이지는 않았다. 한신이 누가 뭐라 해도 천하를 통일하는데 일조한 일등공신이었기 때문이었다. 한신을 죽이지 않고 사면하는 대신 초왕에서 회음 후로 강등하였다. 강등당한 한신은 유방이 자신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있음을 깨닫고 병을 핑계로 함께 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신은 자기 수하로 있던 자들과 같은 반열에 놓이게 된 것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한신은 날이 갈수록 유방에 대한 불만이 쌓이기 시작했고 결국 거록의 태수 진희와 공모하여 반역을 꾀하게 된다. 그러나 계획이 유방의 아내 여태후에게 발각되면서 결국 한신은 최후를 맞게 된다.

한신은 참수되기 직전 '그때 괴통의 말만 들었어도..."라며 탄식한다.

 

토사구팽을 보는 두가지 관점

토사구팽 당한 한신의 입장에서 보면 한고조 유방은 속이 좁아 보인다. 중국을 통일한 황제에게 속이 좁고 그릇이 작다는 말이 반박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의리 있고 많은 공을 세운 신하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배척했다는 것은 황제로서 부족한 점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선조의 관계가 그렇다. 선조는 백성들의 신망이 높은 이순신을 시기하고 두려워했었고 그런 왕 때문에 이순신 장군은 갖은 고초를 겪었다. 한신의 입장에서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팽'당했다는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유방의 입장에서 보면 한신은 껄끄러운 신하였다. 만약 한신이 겸손하고 자신의 공적을 자랑하거나 재능을 뽐내지 않았다면, 유방에게 미움받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다익선의 일화와 같이 한신은 유방의 성격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능력이 출중함을 내세우다가 미움을 받고 경계의 대상이 된다. 속된 말로 눈치가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강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한신은 자기 무덤을 스스로 팠던 것이다.

결국 부적절한 처신으로 황제에게 괘씸한 인상을 남기고 거기에 더해 모반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까지 심어 줌으로써 스스로가 자신을 망친 셈이니 말이다. 한신이 겸손하게 처신을 하였다면 토사구팽 당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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