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종은 세조의 둘째 아들로 세조가 죽고 조선 8대 왕에 오른다. 왕에 오르고 약 13개월 만에 죽어 특별한 업적이나 사건은 적다. 직전수조법을 제정하여 둔전을 민간에서 경작할 수 있게 하였고 재위 기간 중 특별한 사건으로는 남이의 옥이 있다.
주요사건
1469년 직전수조법 제정
예종은 군량을 얻기 위해 경작하는 토지 (둔전)을 백성이 경작할 수 있게 허락하였다.
1468년 남이의 옥
남이가 역모 죄로 처형당한 사건이다. 남이는 1457년 세조 재위 기간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였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등의 무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이후 병조판서가 되었다. 하지만 예종은 세조 때부터 남이를 못마땅하게 여겼고 미워하였다. 세조가 죽고 즉위한 예종은 훈구대신들이 남이가 병조판서에 적임자가 아니라고 주장하자 그를 병조판서에서 해임한다. 이후 남이는 그를 시기하던 유자광의 밀고로 역모 죄로 몰리게 되고 끝내 처형당한다. 이것이 남이의 옥이다.
남이의 옥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하늘에 혜성이 나타나자 숙직을 하던 남이는 다른 이에게 “혜성은 묵은 것을 몰아내고 새로운 것을 불러들이는 징조다.”라고 말했다, 이를 엿들은 유자광은 남이의 말에 거짓을 더해 남이가 반역을 꾀한다고 왕에게 고하자 옥사가 일어났다. 옥사란 반역, 살인 따위의 크고 중대한 범죄를 다스리는 것을 말한다.
남이의 옥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하나는 위의 내용처럼 유자광과 예종의 미움을 받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역모 죄로 옥사를 당했다는 해석이 있고 다른 하나는 병조판서에서 쫓겨난 남이가 역모를 계획했다는 해석으로 훈구대신을 제거하려는 무인 반란의 성격을 띤다는 것이다.
남이 장군 묘
남이의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경기도 화성시에 있지만 실제로 남이가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남이 장군이 묻혔다는 가묘가 강원도 춘천에도 있다. 남이섬이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요약
13개월의 짧은 재위기간을 지낸 조선 8대 왕이며 이 시기 특별한 사건은 남이의 옥이 있다.
예종
▶ 조선 8대왕
▶ 본명 : 이황
▶ 세조의 둘째 아들.
▶ 출생과 사망 : 1450년 ~ 1469년
▶ 재위 기간 : 1468년 ~ 1469년
▶ 주요 사건 : 남이의 옥, 직전수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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