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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story

계유정난과 단종복위운동

by ⊂∵⊃⊆∵⊇∈∵∋ 2021. 9. 4.

계유정난으로 왕위를 찬탈당한 어린 왕 단종과 그를 다시 복위시키기 위해 일어난 사건들도 알아보자.

 

 

비운의 왕 단종

단종은 수양대군 (단종의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 단종은 조선의 여섯 번째 왕으로 본명은 이홍위이다. 문종의 아들이며 1450년 세자에 책봉된다. 이후 문종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다. 재위 기간은 1452년부터 1455년이다.

 

문종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 된 아들을 염려하여 김종서와 황보인 등에게 아들의 안위를 부탁하였다. 또 성삼문, 박팽년 등의 집현전 학사들에게도 아들을 보필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하지만 야망이 가득한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죽인다. 실권을 쥐게 된 수양대군은 왕위를 빼앗는다. 이후 성삼문, 금성대군 등이 단종을 복위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실패하여 죽임을 당한다. 단종 역시도 이에 책임을 물어 서인(庶人)으로 강등되었으며 자살을 강요당하다가 1457년에 영월에서 죽음을 맞는다. 묘(장릉)는 단종이 목숨을 끊은 강원도 영월에 있다.

 

단종과 관련된 주요 사건

1453년 10월 10일 계유정난

계유년에 수양 대군(세조)이 어린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한 사건이다. 단종이 즉위하고 좌의정 김종서와 우의정 정분이 단종을 보필하였다. 김종서는 세종 때 6진을 개척한 용맹한 장수이자 지혜를 겸비한 문신이었다. 왕위를 노리는 수양대군에게 당시 "대호"라는 별호를 가진 김종서는 걸림돌이었다. 결국 수양대군은 김종서의 집을 기습하여 그와 그의 두 아들을 죽인다. 김종서를 살해한 후 ‘김종서가 모반하였기 때문에 죽였다’고 단종에게 고한다. 또 단종을 압박하여 중신들을 소집토록 한 후 영의정 황보인, 이조판서 등을 죽이고 우의정 정분 등을 유배시켰다. 그리고 자신의 동생 안평대군도 강화도로 유배시킨 뒤 사사하였다. 수양대군은 계유정난으로 반대파를 숙청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2년 뒤인 1455년에는 단종을 몰아내고 왕(세조)이 되었다.

 

1453년 이징옥의 난

계유정난 소식을 들은 함길도 도절제사 이징옥이 일으킨 반란이다.

이 난은 조선왕조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반란이다.

수양대군은 이징옥을 김종서 측 인사로 보고 그를 파면하고 박호문을 임명한다. 이에 이징옥은 박호문을 죽이고 병력을 몰아 북쪽으로 가 종성에서 스스로를 ‘대금 황제(大金皇帝)’라 칭한다. 그리고 여진족에게 도움을 청해 저항하였으나 종성 부사 정종, 호군 이행검 등에게 살해되어 반란은 실패한다.

 

 

1456년 사육신 사건

왕위를 찬탈한 세조 2년(1456년) 성삼문 등이 세조의 왕권 강화책에 반발하여 단종 복위를 명분으로 세조를 몰아내려 한 사건이다. 세종과 문종 재위 시절 신임을 받던 신하들은 수양 대군의 찬탈 행위에 반감이 있었다. 당시 집현전 학자였던 성삼문과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과 임금을 호위하던 유응부는 단종 복위를 결의한다.

1456년 명나라 사신을 위한 잔치에서 세조를 제거하기로 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 이후 거사를 함께 하기로 했던 김질이 밀고함으로써 관련자들은 체포된다.

세조는 관련된 자들을 잔인하게 고문하며 죄를 물었으나 성삼문 등은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죽임을 당했고 가솔들도 죽임을 당하거나 노비가 되었다. 또 단종 복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집현전도 폐지되었다.

*사육신 : 단종 복위를 위해 노력하다가 죽은 충성스러운 6명의 신하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생육신 : 죽음 대신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절개를 지킨 6명의 신하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

 

1457년 단종 복위 운동

세조 3년 (1457년) 단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금성대군과 이보흠이 주도하여 영주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이들은 향민들과 함께 단종의 복위를 계획하였으나 관노의 고발로 실패하였고 죽음을 맞이한다. 이 사건도 계유정난 이후 이징옥의 난과 사육신 사건 등과 같이 세조에 대한 반발과 맥락을 같이한다.

금성대군은 세종의 여섯 번째 아들이다. 수양대군에 의해 삭녕(경기 연천군 및 강원 철원군 일부 지역의 옛 이름)으로 유배되었다가 광주(廣州)로 이배 되었다. 1456년 사육신 사건으로 경상도 순흥도호부(영주)에 위리안치된다.

위리안치란 유배된 죄인이 거처하는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을 말한다.

이보흠은 문종의 총애를 받았던 신하로 1457년 순흥 도호부사로 부임하였다. 위리안치되었던 금성대군과 만나게 된 이보흠은 단종 복위를 위한 거사를 준비하게 된다. 단종을 순흥으로 옮겨 복위를 꾀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관노의 고발로 단종 복위 운동에 대한 조사가 시작되면서 실패하였다.

 

 

요약

계유정난으로 세조는 단종에게서 왕위를 찬탈하였다. 이후 세조의 행위에 반발한 이들은 단종 복위를 계획하지만 실패하였고 결국 단종도 영월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단종

조선 6대 왕

문종의 아들.

본명 : 이홍위

출생과 사망 : 1441년 ~ 1457년

재위 기간 : 1452년 ~ 1455년

주요 관련 사건 : 계유정난,사육신 사건,단종 복위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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