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사기열전의 내용 중 손자, 오기열전에 나오는 손빈의 일화이다.
손빈은 손무(손자), 오기와 더불어 춘추전국시대의 유명한 군사가이자 병법가이다.
손무가 세상을 떠난 지 100여 년쯤 뒤에 손빈이라는 사람이 등장했다.
손빈은 제나라의 아읍과 견습근처에서 태어났으며, 손무의 자손이다.
손빈은 옛날에 방연과 함께 병법을 배웠다.
방연은 공부를 마치고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여 장군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자신의 재능이 손빈을 따를 수 없다고 생각하여 몰래 사람을 보내 손빈을 불렀다.
방연은 손빈이 도착하자, 그가 자기보다 뛰어난 것을 두려워하고 질투하여 죄를 뒤집어 씌워 두 다리를 자르고 얼굴에 글자를 새겨 숨어 살게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고자 했다.
그 뒤 제나라 사자가 위나라로 갔을 때, 손빈은 형벌을 받은 몸이었으므로 몰래 제나라 사자를 만나 설득했다.
제나라 사자는 손빈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몰래 수레에 태워 제나라로 돌아왔다. 제나라 장군 전기(田)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빈객으로 예우해 주었다.
그 당시 전기는 제나라 공자들과 자주 마차 경주 내기를 하곤 하였다.
손자는 그 말들이 달리는 속도에는 별 차이가 없지만 말에 상·중·하 등급이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손자는 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기를 크게 거십시오. 저는 당신이 이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전기는 손빈을 믿고 제나라 왕과 공자들에게 천금을 건 내기를 했다.
경기가 시작되려 하자, 손빈은 말했다.
"지금 당신의 하급 말과 상대편의 상급 말을 겨루게 하고, 당신의 상급 말과 상대편의 중급 말을 겨루게 하며, 당신의 중급 말과 상대편의 하급 말을 겨루게 하십시오."
세 등급의 말의 시합이 끝난 결과 전기는 첫번째는 지고 두번째, 세번째는 이겨 천금을 얻었다.
그래서 전기는 손빈을 위왕에게 추천했고, 위왕은 그에게 병법을 묻고는 마침내 군사로 삼았다.
그 뒤 위나라가 조나라를 치자, 조나라는 다급하여 제나라에 도움을 요청했다.
제나라 위왕은 손빈을 장군으로 삼으려고 했으나 손빈은 이렇게 말하며 사양했다.
"형벌을 받았던 사람은 장군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위왕은 전기를 장군에 임명하고, 손빈을 군사로 삼아 작전을 세우도록 하였다.
전기가 병사들을 이끌고 조나라를 지원하기 위해 조나라로 가려고 하자 손빈이 이렇게 말했다.
"어지럽게 엉킨 실을 풀려고 할 때 주먹으로 쳐서는 안 되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려고 할 때도 그 사이에 끼여들어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 됩니다. 급소를 치고 빈틈을 찔러 형세를 불리하게 만들면 저절로 물러나게 되는것입니다. 지금 위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죽을 힘을 다해 싸우고 있으니, 날쌘 정예 병사들은 틀림없이 모두 나라 밖으로 빠져나가고 쇠약하고 지친 자들만 나라 안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장군께서는 병사들을 이끌고 빨리 위나라의 수도 대량으로 쳐들어가 중요한 길목을 차지하고 텅빈 곳을 치십시오. 그러면 그들은 틀림없이 조나라 공격을 멈추고 자기 나라를 구하러 들어올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은 한 번 움직여 조나라의 포위망을 풀어 주고 위나라를 피폐하게 할 수 있습니다."
전기는 손빈의 계책에 따라 움직였다. 그러자 위나라는 조나라의 수도 한단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이후 계릉에서 제나라 군대와 싸웠으나, 제나라 군대는 위나라 군대를 크게 무찔렀다.
그로부터 13년 뒤, 위나라와 조나라가 함께 한나라를 공격하자 한나라는 제나라에 위급함을 호소했다. 제나라에서는 전기를 장군으로 삼아 내보냈다. 전기는 곧장 대량으로 쳐들어갔다. 위나라 장군 방연은 이 소식을 듣고는 한나라 공격을 그만두고 돌아갔으나, 제나라 군사는 방연보다 한 발 앞서 위나라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손빈은 전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위나라 병사들은 원래 사납고 용감하며 제나라를 무시하고 제나라 군사들을 겁쟁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그 형세를 잘 이용하여 유리하게 이끌어 나갑니다. 병법에 '승리를 좇아 100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상장군을 잃게 되고, 승리를 쫓아 50리 밖까지 급히 달려가는 군대는 겨우 절반만 목적지에 이른다' 라고하였습니다.
우리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 땅에 들어서면 첫날에는 10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고, 다음 날에는 5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며, 또 그 다음 날에는 3만 개의 아궁이를 만들게 하십시오."
방연은 제나라 군대를 뒤쫓은 지 사흘째가 되자, 몹시 기뻐하며 말했다.
"나는 일찍이 제나라 군사가 겁쟁이인 줄 알고 있었지만, 우리 땅에 들어온 지 사흘 만에 달아난 병사가 절반을 넘는구나."
그리고는 그의 보병들은 따로 남겨둔 채 날쌘 정예 부대만을 이끌고 이틀 길을 하루 만에 달려 급히 뒤쫓았다.
손자가 방연의 추격 속도를 헤아려보니, 저녁 무렵이면 위나라의 마릉에 도착할 것 같았다.
마릉이란 곳은 길이 좁은 데다가 길 양쪽으로 험한 산이 많아 병사들을 매복시키기에 좋았다. 손빈은 길 옆에 있던 큰 나무의 껍질을 벗겨 내고 흰 나무 속에 이렇게 써 놓았다.
"방연은 이 나무 아래에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는 제나라 군사 중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을 골라 일만 개의 쇠뇌를 준비시켜 길 양쪽에 매복시키고 이렇게 약속했다.
"밤에 불빛이 보이면 일제히 쏘도록 하라."
방연은 과연 밤이 되어서야 껍질을 벗겨 놓은 나무 밑에 도착했다.
그는 흰 부분에 쓰여진 글씨를 발견하고는 불을 밝혀 비추어 보았다. 방연이 그 글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제나라 군사들은 한꺼번에 수많은 쇠뇌를 쏘아댔다. 위나라 군사들은 우왕좌왕하며 뿔뿔이 흩어졌다. 방연은 자신의 지혜가 다하고 싸움에서 졌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했다.
"결국 어린애 같은 놈의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구나."
그리고는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제나라 군대는 승리의 기세를 몰아 위나라 군대를 전멸시키고 위나라 태자를 포로로 잡아 돌아왔다.
손빈은 이 일로 해서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며 그의 병법이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다.
- 을유문화사 사기열전 (상)_사마천지음, 김원중 옮김 중에서 -
위 일화에서 손빈은 넓은 시야와 안목을 가지고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으며 적의 약점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손빈의 능력을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전기는 손빈의 재능을 시기하지 않고 예우하여 그를 아군으로 만들었고 방연은 손빈을 시기하여 적으로 돌렸다는 것이다.
결과는 방연의 죽음이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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